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쇠고기 수입'에 해당되는 글 13건

[Echo칼럼] 덩치만 컸지, 그에 값하는 권위는 없는 어느 신문의 경우

여기 모든 것을 다 가진 신문이 있다. 이 신문은 재벌언론이다. 돈도 많은데다, 독자수도 국내 1,2위를 다툰다. 당연히 몸집이나 규모도 메이저급이다. 게다가 정권에 이쁨도 받고 있고, 영향력도 상당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딱 한 가지가 없다. 바로 신문의 권위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 와중에서 이 신문은 적잖은 사설을 내놨다. 한결같이 그만 촛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 그러나 그 말을 새겨 듣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신경쓰는 이조차 없었다. 존재감 제로. 그랬다. 그것은 철저한 독백이었다. 지독한 무관심이었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지껄이는 신문의 비극이라니...

촛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이 신문의 첫번째 설교는 5월 5일 나왔다. 국회가 여야 합의로  쇠고기 청문회를 열기로 했으니 "잘못된 정보에 홀려 거리로 나섰던 이들은 이제 촛불을 끄고 TV 앞에 앉을 때"라는 얘기. 이어 "이제 모든 사람은 사실만을 직시하는 냉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사설, <미국 쇠고기 사태, 사실만을 보며 냉정해야>).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다음 날도 여전히 촛불을 들고 소라광장으로 나갔다.

촛불을 끄라는 두번째 설교는 5월 30일에 나왔다. 미국산 쇠고기의 새 수입위생조건을 담은 장관 고시가 발표됐고, 더 이상 다른 방도를 찾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니만큼 "이제 우리 사회는 촛불을 끄고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반정부 운동의 빌미로 악용돼선 안 된다"는 경계의 말도 이 신문은 잊지 않았다.(사설, <쇠고기 수입고시, 뒷수습은 깔끔하게>). 그러나 그 다음날 촛불은 더 뜨겁게 타올랐고, 거리에선 그 말을 비웃듯 '이명박 해고'를 외치는 아우성으로 넘실거렸다.

그리고 6월 3일, 촛불시위를 중단하라는 세번째 설교가 나왔다. 그 전에 사설을 잠시 들어 보자. 이 신문의 거듭되는 설교와 사태 전개의 상관성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부터 시위 현장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주장은 점차 줄어들고 정치구호가 많이 들리는 등 집회의 성격이 변질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정권퇴진 등 정치적인 주장과 연결해서는 안 된다..."

어떤가? 모든 게 정반대다. 어긋나도 이렇게 어긋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신문의 설교는 '무조건 Go'다. 고장난 테이프가 따로 없다. "한 달여 동안 계속된 시위를 통해 시민들의 의사표시는 충분했다고 본다...이번 시위는 중단돼야 한다." 운운.(사설, <촛불시위 그만하면 충분하다>).    
 
'100만 촛불시위'가 예약된 6월 10일을 하루 앞두고 네번째 설교가 터져 나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정부가 한·미 수출입 업계의 자율합의를 유도해 30개월령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기로 했고, 내각 총사퇴 등 대규모 인사 쇄신책도 마련 중에 있으니 이제는 "시간을 주고 결과를 지켜보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이날 사설의 마지막 말은 제목과 똑같이 "이젠 정부에 시간을 주자"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예정대로 100만개의 촛불은 전국 각처에서 환하게 불타 올랐다. 서울에서만 50만. 그것은 장관이었다. 동화면세점 4거리에서부터 남대문까지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의 함성은 청와대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이순신 동상 앞에 컨테이너로 이른바 '명박산성'을 쌓고 민심을 차단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이 신문은 그 다음날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자>(제목)고 설교했다. 소통을 거부당한 채 허공을 맴도는 공허한 다섯번째 설교의 한 대목을 잠시 들어 보자.

"집회를 주도한 재야·시민단체도 이젠 제 위치를 찾아가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청와대 담장을 넘어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대통령은 바뀔 것이다. 시청 앞 광장에는 민주노총·전교조·공공서비스노조 등 여러 이익단체가 텐트를 쳤었다. 그 광장은 국민 모두의 것이다. 이젠 광장을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왔던 가장, 유모차를 밀었던 주부, 어려운 민생에 분노했던 서민·노동자, 쇠파이프로 경찰을 때렸던 시위대…. 광장과 도심을 메웠던 모든 시민도 이제는 가정과 학교·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서울광장은 여전히 '이명박 아웃'을 부르짖는 인파들로 넘쳐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명박 대통령이 조삼모사식 수습책을 내놓은 것은 6월 19일.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쇠고기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의 보장이 없으면 수입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운하 등도 "국민이 반대하면 안하겠다"고 했다. '뼈저린 반성"이란 수사도 입에 담았다.

여섯번째 설교는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대통령의 새 출발 다짐을 지켜보자>는 사설에서, 이 신문은 대통령이 새 출발을 다짐했으니 "이제는 각자의 욕구는 담아두고 대통령의 새 출발을 지켜볼 때다"고 훈계했다. "대통령의 말대로 대통령과 미국 정부를 일단 믿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한 시위대는 이제는 촛불시위와 도로 불법점거를 끝내야 한다"고 주문했다.(6.20)

그로부터 사흘 지난 6월 23일, <이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낯익은 제목을 단 일곱번째 설교가 다시 모습을 선보였다.(6월 11일 사설 제목과 비교해 보라.)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흡사하다. "이제 각자 생업 현장으로 돌아가 대통령과 정부의 약속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지켜보라"는 그런 얘기. 게다가 "촛불시위는 그만 멈추고, 참가자들은 모두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 정부의 약속을 지켜보는 것이 맞다"는 식의 뻔한 레파토리.

촛불집회가 중단돼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보다 더 많게 나왔다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기도 하고, '폭력행위' 운운하며 " 시민들의 인내 한계를 넘어섰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되풀이하며 공권력의 엄정한 집행까지 거들었지만, 그러나 이 설교 역시 독백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 듯 하다.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으니까. 어차피 혼자 지껄이고, 혼자 자위하고, 혼자 노는 그런 서글픈 게임이었으니까.

이 신문이 어떤 신문인지 궁금한가? 눈 밝은 분들은 이미 알아 차렸을 게다. 그렇다. 이 신문은 바로 중앙일보다.(2008.6.24)



- 虛虛 -

>>> http://findingecho.tistory.com/ 

Posted by 虛虛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입 닥치고 조낸 찾는거다. 디오게네스마냥 등불 들고서... 찾을 때까지 끈질기게... 근데 뭘 찾어~~~?
虛虛

달력